우리 부부는 영화를 보면 그 영화를 주제로 서로의 시각과 생각을 나누는 걸 즐기는데 영화 는 오랜만에 영화 후기가 더 길었던 영화였다. 전공도 다르고 현재 하고 있는 일의 분야도 다르기에 뜨거웠던 토론이 이어졌고, 우리 둘 모두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동의했던 영화의 요소 요소가 정리되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문제는 어떤 방법을 쓰느냐가 아닌,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지금 당신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군요. 당신이 하는 사업은 햄버거를 파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을 파는 겁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내게 맥도날드는 ‘햄버거 가게’ 또는 ’세계적인 프랜차이즈 기업’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 맥도날드는 ‘부동산이라는 오프라인 채널을 활용한 플랫폼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사업을 바라보는 시점을 옮겨준 이 순간이 가장 인상깊었다.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성장할수록 복잡한 문제와 맞닥뜨릴 때,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할지에 대해 먼저 고민하게 된다. 소위 전략을 짜게 되는 건데, 이 장면은 같은 사업일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후 전략이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 생각된다. 레이가 맥도날드를 계속 햄버거 가게로만 보고 있었다면 맥도날드는 그저 30초 안에 주문한 햄버거가 나오는 지역 맛집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상품과 소비자, 그리고 생산자가 명확히 보일 때 그들의 관계를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나 역시도 점점 증가하는 무형의 서비스들의 공급 루트는 잘 읽지 못할 때가 많은데, 영화를 보고 나서 사업의 근간에 깔려 있는 플랫폼 (사람들이 그 위에서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빠져나가기 힘든 구조, 마치 아마존의 Flywheel 같은) 설계가 비즈니스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때 움직인다
맥도날드의 진짜 창업자인 맥과 딕 형제로부터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사업 계약을 성사시킨 후 레이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VIP 클럽 친구들에게 프랜차이즈 영업을 제안한다. 동일한 메뉴와 고객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 프랜차이즈이지만 VIP 클럽 친구들은 자기들 멋대로 매장을 운영하고 이에 분노한 레이는 그들 대신 주어진 일을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매장 점주 자리를 준다.
이미 주머니에 돈이 풍족한 친구들은 프렌차이즈 업주(레이)의 규칙(Rule)을 철저하게 지킬 필요가 없다. 자기들이 좋을 대로 하고 영업장보다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레이는 이 모습에 분개하고 새롭게 점주를 모집하는데, 직접 설명회를 개최하며 맥도날드가 무엇인지 여기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한다. 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하나같이 강조하는 것은 맥도날드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회(opportunity)라는 점이었다. 단순히 햄버거를 파는 매장의 관리직이라는 게 아니라 이 매장을 통해 너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우리가 함께 일한다면 어떤 것을 더 해낼 수 있을지 그려줌으로써 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앞다투어 손을 들게 만들었다. 더 나은 미래가 절실하고 그러한 기회를 붙잡을 용기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일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즉, 누가 판을 Control(통제) 할 수 있는가?
플랫폼을 차지하는 자, 결국 판을 주도하는 자
맥과 딕 형제는 Quality Control 때문에 프랜차이즈 사업에 회의적이었다. 맥도날드 햄버거가 지역에서 인기를 얻으며 사업이 확장될수록 맥과 딕 형제의 Quality 에 대한 고집은 더욱 공고해졌다. 레이는 ‘사람’을 통해 그 동안 실패했던 품질보증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결국 맥도날드를 Local 이 아닌 National 한 비즈니스로 도약시켰다.
사업가 레이는 ‘기회’를 포착했고 그 기회를 잡을 용기가 있었다. 거기에 기회를 함께 발전시킬 사람을 스스로 구하기도 하고(매장 점주) 우연하게 얻기도 했다(자신에게 부동산 사업임을 일깨워준 사람, 사업적인 고민을 함께 나누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준 새 아내).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맥과 딕의 Quality Control의 규제를 벗어버리고 부동산을 근간으로 하는 사업을 통해 자신이 더욱 공격적이고 주도적으로 비즈니스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Control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맥도날드의 소유권을 두고 레이와 맥&딕 형제가 싸우는 장면에서 레이는 맥도날드의 컨셉을 만든 것은 바로 자신이라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도 행복의 상징인 맥도날드의 Golden Arch를 포착하고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낸 것은 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레이가 비열한 창업자라는 의견에 회의적이다. 물론 방법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비열할 수 있다. 그러나 브랜드의 차원에서 보면 비열하다기 보단 전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만약 맥&딕 형제와 레이가 끝까지 협업을 했다면?
만약 맥&딕 형제가 레이와 끝까지 협업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지금의 맥도날드가 존재했을까? 맥&딕 형제와 레이의 시각차는 매우 뚜렷했고 사업이 확장될수록 타협의 여지는 줄어들었다. 사업 확장을 위해선 제품의 고유 속성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영화 속에서는 이 둘 사이를 중재해주는 역할이 없었다. 생산자와 영업맨 사이에 상품을 기획하고 상품의 전략을 세우고 광고 메시지를 같이 고민하고 조율하는 담당자도 그러한 과정도 없었다.
이 점이 아쉬웠다. 이 두 팀이 환상적으로 각자의 롤을 훌륭히 수행했다면 맥도날드는 지금처럼 글로벌적인 기업이면서 건강한 식품을 만드는 회사로 이미지가 만들어져 있을 수도 있었을지도?
그래서 이 둘의 관계는 더욱 골이 깊어질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기업에서도 같은 상품을 제조하는 생산직에 있는 사람과 사무직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라 오해하고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더러 있듯이 말이다.
+플랫폼과 광고
플랫폼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광고’로 이어진다. 신규 상품 출시나 어떤 콘텐츠에 대한 기획을 할 때면, 대외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함께 짜기 마련인데, 이때마다 ‘네이버는 좋겠다.’ ‘카카오는 좋겠다. 이모티콘 하나만 출시해서 뿌려도 팔로워가 수천은 넘을 수 있을텐데’ 와 같은 하염없는 부러움을 토해내곤 했었다. 1인 1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개개인을 타겟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을 가졌다는 건 분명 큰 장점이다.
통신이 발달할수록 모든 산업은 데이터/트래픽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수많은 상품들이 자기네들끼리의 경쟁을 뚫고 소비자 품에 안기기 위해 점점 더 광고/홍보를 영리하게 만들고 있다. 광고이지 않은 척, 진짜 소비자 후기인 척, 콘텐츠의 일부인 척 다양한 크리에이티브가 광고에 반영되고 있지만 핵심은 그러한 광고 구좌를 판매하는 기업들의 광고 상품에 따라 광고 크리에이티브도 점차 변화한다는 것이다. 광고 상품을 소비하는 우리들의 이용 행태는 고스란히 광고 이용 보고서에 녹아들어 광고주에게 전달될 것이고, 이 보고서를 토대로 다시금 새로운 광고 전략을 짜서 광고를 집행할 것이다.
새로운 트렌드를 읽고 아이디어를 자극하는 측면에서 콘텐츠의 소비는 바람직하지만, 그 콘텐츠가 어떤 목적에서 만들어졌는지 모르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개미지옥
아마존의 Flywheel 모델을 듣고 내가 생각했던 단어다. 지옥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엄청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선순환’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반대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겐 악순환이겠지만)
낮은 비용의 구조를 발판으로 시작된 성장은 소비자들을 집중시키고, 결국 판매자도 이끌어낸다. 다른 곳보다 저렴하니 소비자들은 점점 더 아마존을 통해 물건을 사고 판매자도 소비자가 많은 곳을 찾아 아마존으로 올 수 밖에 없다.
나는 이 구조에서 가장 무서운 단어는 바로 ‘트래픽’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시대인 요즘 ‘트래픽’이 되는 건 모두 돈이 되는 것 같다. 트래픽을 발생시키기 위해 매일같이 쏟아지는 콘텐츠들을 보며 선순환이라기 보단 개미지옥이 떠오른 건 나의 이런 무서움이 투영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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